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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를 말하다
부마를 말하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던 항쟁 당시 시민들의 기억을 담았습니다.
부마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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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안창홍
안창홍님 (화가)
부마항쟁 당시 부산 대청동 미국문화원 뒷골목에서 화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화실 근처 대청동과 남포동 등지에서 시위에 참여하였다. 구술자에게 부마항쟁은 굉장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무런 표식도 없는 트럭에서 나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모습을 본 일반인들이 크게 동요하여 부마항쟁에 적극 나선 것이다. 부마항쟁 이후 불온작가로 낙인찍혀 2년간 중앙정보부로부터 전화 도청 및 감시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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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이윤호
이윤호님 (예비 신학생)
구술자는 한국전쟁의 ‘영웅’인 부친의 전쟁 트라우마와 보수적 정치관으로 인해 성장기에 큰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이로 인해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에서의 종교 활동에 더욱 몰두했다. 1979년 성당 친구들과 함께 부마항쟁에 참여했고 남포파출소에 붙잡혀 취조를 받다가 시위대의 습격 때 어수선한 틈을 타 탈출했다. 이후 사제가 되어 빈민 선교에 종사했는데 자신의 세계관이 부마항쟁 기간 또래들과의 대화와 시위 참여에서 형성되었음을 새삼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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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이경재
이경재님 (동아대 방송국장)
구술자 이경재는 부마민주항쟁 당시 동아대학교 방송국장이었다. 10월 17일 학내 분위기는 어수선했는데, 10시 30분경 법경대 학생들의 잔디밭 연좌 농성 소식을 들었다. 12시쯤엔 학도호국단 사단장이었던 이용수 씨가 시위가 벌어질 텐데 시위대가 교문을 나서면 애국가를 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후 학내 시위 진행을 기다리며 방송국에 대기했는데, 결국 애국가를 틀지 못했던 구술자는 방송국 정리를 하고 대청로에서 저녁 내내 시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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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박상도
박상도님 (도시산업선교회 총무)
구술자는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를 접하였으며, 성장기의 진로 결정에 교인들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을 정도로 생애 전반에 기독교가 미친 영향이 컸다. 1974∼76년경 헌혈운동과 반유신운동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부산YMCA 간사(1976), 부산도시산업선교회 총무(1977)를 맡으며 최성묵, 김광일, 김형기 등과 함께 부산 민주화운동계의 중간 간부급으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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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윤경태
윤경태님 (재수생)
구술자는 1960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동래고등학교와 부산대학교를 나왔다. 재수생 시절 경남학원을 다니다가 부마민주항쟁을 맞이했다. 그는 경남학원을 다니면서 한 선배로부터 일종의 의식화가 되었다고 한다. 구술자는 10월 17일 일찍 귀가하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을 들었지만 학원 친구들과 함께 남포동에서 시위에 참여했다. 남포동, 국제시장 일대를 뛰어다녔고, 상인, 시민들은 물을 주거나 숨겨주는 등 자신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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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손갑주
손갑주님 (노동자)
구술자는 경남 남해에서 출생했다. 1979년 당시 유성급유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였으며, 이때 부마민주항쟁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젊은 청년의 혈기에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남포동 거리를 돌아다녔다. 10월 17일 오후 5시경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구술자는 군인으로 보이는 장정들에 의해 곤봉으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이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술자는 중부경찰서에 연행되어 며칠 구금되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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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김희라
김희라님 (부산여대 학생)
구술자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 다시 부산에 내려와 1977년 부산여대 미술학과에 진학하였다. 학보사에서 사진과 만화를 담당하였지만 정치나 사회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1979년 10월 18일 계엄령 발령 소식도 휴교령으로 폐쇄된 교문 앞에서 친구를 통해 들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침묵시위에 동참하여 대열의 선두 그룹에 서서 팔짱을 끼고 서면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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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이춘성
이춘성님 (경찰)
79년 부마민주항쟁이 있던 해에 부산동부경찰서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부마항쟁 때 상부의 명령으로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10월 18일에는 부하 4명과 함께 시위대 동향 파악, 주동자 검거 임무를 맡아 광복동에 나갔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계엄군에 의해 무차별적 폭행을 당하는 시민을 보고 계엄군에게 항의했다. 계엄군은 경찰임을 인지하고도 구술자와 그의 부하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여 부하 1명은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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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박건
박 건님 (동아대 미대생)
10월 16일 여느 때처럼 학교로 갔으나 휴강이었다. 빈 강의실 칠판에 쓰인 ‘4시에 부영극장 앞 집결’을 보고 혼자 부영극장으로 갔다. 남포동과 자갈치 사이 대로에서 시위를 시작하자마자 경찰 버스가 와서 시위대를 마구잡이로 버스에 밀어 넣었고, 구술자도 연행되어 중부경찰서로 이송되었다. 취조 과정에서 곤봉으로 등에 피가 나고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가혹행위를 당했다. 이 고통을 나중에 <긁기>라는 부마항쟁 관련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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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조갑제
조갑제님 (기자)
구술자는 1971년 2월 국제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문화부와 사회부 소속으로 있으면서 중금속 오염 보도 등 여러 특종 보도를 하였다.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현장에서 시위대의 폭발적 에너지를 목격한 데 이어, 10·26사건이 발생하자 항쟁의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는 것을 깨닫고 그 기록을 남기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물이 1987년 6월 29일 출간된 <<유고>>(전 2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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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장동범
장동범님 (기자)
구술자는 부산대학교 4학년 때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기간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취재는 불가능했고 그 현장을 목격할 뿐이었다. 계엄령이 내려진 날 부산역에서 완전 군장한 군인들이 줄지어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저녁에는 광복동 입구에서 젊은 남자가 팬티차림으로 꿇어앉아 있고 그 앞에 군인이 위협적으로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 10.26사건 이후 보도 통제가 내려와 기사는 전부 군인들에게 검열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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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김유원
김유원님 (부산대 학생)
1961년 부산 중구에서 태어난 구술자는 부산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산대 공대 기계공학계열에 입학하여 동문 서클 동녘에서 활동하였다. 동문 선배 이진걸의 부탁으로 1979년 10월 15일 선언문 배부에 참여했고, 16일 시위는 정문 옆 공대 강의동에서 강의를 듣다가 가담하게 되었다. 함께 강의를 듣던 공대 학생들과의 집단적 참여가 아니라 개인적 참여였고, 이후 시내 시위에서 동녘 친구들을 만나 함께 행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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