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목명 |
이경재 |
| 이형명 |
|
| 생년월일 |
|
| 성별 |
남성 |
| 관련장소 |
경남 창녕 |
| 항쟁지역 |
부산, 동아대 |
| 주기사항 |
|
| 항쟁당시신분 |
동아대 방송국장 |
| 구술요약 |
구술자 이경재는 부마민주항쟁 당시 동아대학교 방송국장이었다. 그는 평소 시국에 대해 큰 인식은 없었으나 방송국에서 활동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는 많이 접할 수 있었다. 10월 15일과 16일의 항쟁 과정은 접해서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10월 17일 학내 분위기는 어수선했는데, 10시 30분경 법경대 학생들의 잔디밭 연좌 농성 소식을 들었다. 12시쯤엔 학도호국단 사단장이었던 이용수 씨가 시위가 벌어질 텐데 시위대가 교문을 나서면 애국가를 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후 학내 시위 진행을 기다리며 방송국에 대기했는데, 시위대는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빠져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애국가를 틀지 못했던 구술자는 방송국 정리를 하고 대청로에서 저녁 내내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 후 찝찝한 마음에 10월 19일, 고향인 경남 창녕의 고모댁에 갔다가 10월 21일에 본가로 귀가했다. 10월 22일에 영도경찰서 경찰들이 찾아와 대질신문할 것이 있다고 하며 데려갔는데, 그것이 동아대 주도자 혐의를 받고 체포된 경위였다. 그는 동아대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구금되었고, 모진 조사와 고문을 받았다. 10․26 이후 조사와 고문은 줄어들었으며, 10월 30일 즉결 심판 후 3일 구류형을 받고 11월 1일 석방되었다. 구술자의 부마민주항쟁 경험은 구술자에 따르면 큰 성장의 계기였고,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한다. 부마민주항쟁은 지금도 구술자에게 큰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
| 부마민주항쟁관련 |
부마민주항쟁, 동아대학교, 동아대학교 방송국, 동아대학교 학내 시위, 10월 17일, 영도경찰서 , 국가폭력 |
| 관련어 |
부마민주항쟁, 동아대학교, 동아대학교 방송국, 동아대학교 학내 시위, 10월 17일, 영도경찰서, 국가폭력, 이경재, 이용수, 김호진, 김백수, 이동관, 변재관 |